[뉴스피크]

한국의 서해안은 잔잔한 풍경 속 놀라운 자연과 생태를 만날 수 있는 지구의 보석과 같은 곳이다. 아침과 저녁으로 달라지는 자연의 파노라마를 따라 달리면 낮은 평야의 끝에 서해바다를 향해 불쑥 튀어나온 변산반도를 만나게 된다.
부안8경 중 6경을 차지하고 있는 채석범주採石帆舟(푸른 바다에 떠있는 배들이 채석강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 일원은 변산반도에서 서해 쪽으로 가장 많이 돌출된 지역으로 강한 파도가 오랜 시간으로 깎아 세운 곳으로 부안을 대표하는 절경지이다. 바다와 맞닿은 수직 암벽이 겹겹이 쌓인 퇴적암 단면을 보여주는 독특한 풍경은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한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별로 알리고 싶지 않은) 유명세를 치룬 새만금을 따라 달리거나, 내륙의 평야에서 곰소염전과 항구를 지나 언덕을 오리내리다보면 그 끝에 변산해수욕장이 있다.
작은 마을, 아담한 송림 그리고 양옆에 나지막한, 그렇지만 우람하고 독특한 바위절벽을 거느리고 있는 변산해수욕장은 포근한 느낌의 해변이다. 단단하고도 고운 백사장과 잔잔한 파도가 조화를 이루는 해안으로 여름철이면 다양한 해양레저와 축제가 함께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부안은 볼 곳, 할 것이 많은 곳이다. 변산과 직소폭포, 그 아래의 내소사와 전나무숲길을 비롯해 젓갈이 유명한 곰소항과 여전히 예전 모습을 간직한 곰소염전까지 그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변산 일대의 터줏대감은 아무래도 채석강이라 할 수 있다. 그 자리를 지켜온 시간이나 새겨놓은 풍경의 웅대함을 보더라도 채석강을 빼고 변산과 부안을 말하기는 어렵다.

그 채석강은 하루에 딱 두 번 사람들에게 자신의 깊은 속살을 보여준다. 썰물의 정점과 그 어름의 시간 동안만 해식동굴의 적막감과 넓게 펼쳐진 암반의 기묘한 디자인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해준다.
채석강을 둘러보는 길은 변산해수욕장 옆으로 가는 길과 격포항 방파제에서 가는 길 두 가지가 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은 자연스러운 곡선이 아름다운 변산해수욕장과 이어지는 길이다. 깊게 들어가지 않더라도, 물이 어느 정도 들어오더라도 채석강의 독특한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과 해수욕장을 찾은 부모들이 둘러보며 함께 감탄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서 격포항 방파제 옆에 있는 해식동굴까지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편도로만 20여 분 정도의 시간을 생각하고 일정을 잡아야 한다. 기묘한 장식의 요철을 새겨놓은 암반은 바닷물로 미끄럽고, 마치 책을 쌓아놓은 듯한 암석층의 서가는 들쑥날쑥 길을 길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하학적인 문양의 돌과 다른 색의 층과 바위 그리고 크고 작은 골짜기를 만들어놓은 파도의 흔적을 하나하나 구경하고, 살피다보면 그 시간은 두 배로 늘어나게 된다. 서해의 물 들어오는 속도는 보기보다 빠르고, 나오고 들어간 굴곡에 따라 바닷물이 차지하는 위치가 다르니 충분히 조심하고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답사하는 게 좋은 곳이 바로 채석강이다.

아마 그래서 변산의 채석강을 본 이들은 많지만, 제대로 본 이가 적은 듯하다. 길고 다채로운 채석강을 충분히 돌아볼만한 시간과 준비를 하지 않은 채 방문을 하고, 오직 한 단편만을, 한 지점만을 보고 급하게 다른 곳, 다른 놀이와 풍경을 찾아 이동을 하기 때문이다.
채석강 주변의 작고, 기묘한 바위들과 해식동굴의 깊고 높은 절경과 절벽을 타고 오르는 지구의 시간은 각각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절벽을 아우르는 닭이봉의 정상 정자에서 서해안과 아래의 풍경도 독특하다. 이곳은 억겁의 시간이 한반도의 자연을 기록한 박물관인 것이다. 비록 연구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시간의 흔적이 주는 놀라운 세기의 풍경을 한번쯤은 제대로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채석강은 가족 체험여행과 청소년들의 야외지질 학습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야외지질 학습은 교실에만 갇혀있는 학생들에게 놀라운 시간과 규모가 큰 자연현상을 관찰함으로써 알고 있는 듯 하지만 실제 경험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감동을 알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채석강은 뒤틀어진 지층과 주변의 기기묘묘한 암석을 관찰하고, 어떤 지질구조이고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약 7,000천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부터 바닷물의 침식을 받으면서 쌓인 이 퇴적암은 격포리층으로 역암 위에 역암과 사암, 사암과 이암의 교대층, 셰일, 화산회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단층면이 거의 수평에 가까운 역단층의 오버스러스트 등을 이루고 있어 자연의 창조성을 제대로 관찰 수 있게 해준다. 교과서에서 알 수 없는 경이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지질 조사에 따르면, 이런 퇴적 환경은 과거 이곳이 깊은 호수였고, 호수 밑바닥에 화산분출물이 퇴적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의 일본 규슈나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처럼 당시 이곳에는 백두산 규모의 화산들이 점점이 불을 뿜고 있었다고 한다. 비록 대부분의 흔적은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으로 대부분 사라졌지만 몇몇 극적인 사건의 기록을 남겨 놓은 것이다.
상상을 해보자. 중생대 백악기 때, 이곳 변산반도에 화산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고, 대규모 지각변동으로 거대한 호수가 생겨났다. 화산 분출물이 쌓이고 쌓여 산이 생성되고, 깊은 호수에 오랜 시간 층층 퇴적층이 쌓이고, 또한 호수에 역암과 황토가 뒤범벅된 채 퇴적하고 산화하여 붉은 퇴적층이 형성되었다. 그때 생긴 산이 내변산이고, 돌출되어 층층 쌓인 퇴적층이 외변산 채석강이고, 그때 형성된 붉은 퇴적층이 외변산 적벽강이라는 것이다.
채석강과 적벽강은 당나라 시성 이태백이 뱃놀이하던 채석강,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노닐 던 적벽강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적벽대전이라는 소설과 영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름 끝의 '강'은 물이 흐르는 강[江]이 아니라 퇴적암 절벽 언덕을 뜻하는 강[岡]이다.

이제 본격적인 채석강 여행을 떠나보자. 해수욕장의 끝에는 오래된 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 옆으로 마치 선을 그은 듯 채석강 절벽과 암석지형이 시작된다.
이쪽은 차분하게 시작되는 느낌이다. 위로는 흙과 풀과 꽃이 피어있고, 그것들을 받치듯 돌로 된 책을 층층이 쌓아 놓았다. 마치 시간에 따라,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쌓은 듯 그 높이와 형식이 제각각이고, 들고 남도 자유롭다. 그렇지만 섬세하게 돌이 쌓아올려진 모습은 단단하고도 아름답다. 사찰 앞에 기원을 담아 높고도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린 돌탑처럼 자연의 정성과 재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변산반도에는 시기별로 9가지 유형의 화산암이 쌓여 있다고 한다. 때로는 폭발하고 때로는 분출한 용암이 흘렀다. 그 복잡하고도 분주한 시간은 절벽과 해안의 암반층에서 충분히 느껴진다. 마치 신들이 돌로 된 책과 종이로 한바탕 난장을 치룬 듯, 절벽 주변은 깨진 돌종이의 파편과 파도에 밀려와 쌓인 듯한 돌종이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 사이로 파도가 갈라놓은 작은 협곡과 아직 굳기 전의 돌 사이로 솟아오른 다른 암석들이 기묘하게 섞여 있다. 그렇게 채석강 바닥에는 지각과 파도의 합작품인 돌개구멍이 발달했는데, 밀물 때 들어온 바닷물이 고여서 생긴 조수웅덩이도 곳곳에 있다.

해변에서 멀어지고, 격포항에 가까워지면서 절벽은 높아지고, 자연의 절경은 웅대해진다. 이곳 절벽에서는 단층과 습곡, 관입구조, 파식대 등도 쉽게 관찰할 수 있어 지형과 지질학습에 좋다.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해식애, 평평한 파식대, 해식동굴도 발달했다.

이곳의 명소는 아무래도 거대한 높이와 적막감을 선사하는 해식동굴일 것이다. 격포항 방파제에 마련된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동굴들이 이어지는데, 그중 가장 큰 곳은 꼭 한 번씩 들리는 사진명소이기도 하다. 검고 날카로운 동굴의 입구와 그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격렬한 바다 그리고 방파제는 그 어느 곳에 얻기 힘든 추억과 풍경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계단을 내려오면 마치 대리석 바닥과 같이 구획으로 나눠진 암석들의 길이 방파제를 따라 길게 이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물길을 피해 암석들 사이로 넘어가면 그 유명한 해식동굴이다. 생각보다 깊지는 않지만 보기보다 아늑하고 신비롭다. 오직 파도가 여기를 만들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해식동굴을 나와 파도가 물러간 경계까지 나가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해식동굴과 절벽 전체를 둘러보자. 각기 다른 시간, 거대한 자연의 사건들에 관한 생생한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색이 다른 암석, 그리고 물결처럼 굽이치고 휘돌아가는 바위의 무늬는 거대한 자연의 힘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바닥에서 발견하게 되는 검은 바탕에 노란 암석 조각이 박혀 표범 무늬처럼 보이는 흔치 않은 암석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호수의 얕은 곳에 점성이 큰 용암이 분출해 차갑고 굳지 않은 점토와 모래를 만나 폭발적으로 뒤섞이면서 만든 암석이자 풍경이라고 한다. 그밖에 다양한 자연사의 기록들이 채석강 곳곳에 새겨져 있다. 단지 스쳐가는 풍경의 명소가 아니라 한반도의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자연사박물관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겸손한 준비와 시간에 대한 존중 그리고 차분한 관찰을 통해 그 어디에서 얻기 힘든 신비하고 놀라운 추억을 만들기를 바래본다.

글 _ 윤민
자료조사 및 정리 _ 이윤지
사진 _ 윤민, 이윤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