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민호의 자치(自治)통찰=뉴스피크] 고양시장 선거를 둘러싸고 며칠째 무거운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4월 19일~20일 결선투표를 거쳐 더불어민주당 고양시장 후보로 확정된 민경선을 두고, 4월 30일경부터 일부 매체에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5월 6일 중앙당사 앞에서 30여 명 규모의 한 시민모임이 후보 교체를 요구했다. 보름도 안 되는 사이에 "비리 의혹 후보로 고양시를 잃을 수 없다"는 문장이 한 후보의 어깨에 얹혔다.
먼저 짚을 사실이 있다. 자금 출처로 지목된 건설업체 대표가 "돈을 건넨 적 없다"는 자필 사실확인서를 직접 작성했고, 민경선 측은 본인과 그 사업가의 통장 거래 내역을 공개해 거래 흔적이 없음을 보였다.
고발인은 그 사업가와 사이가 틀어진 전 직원으로 알려졌고, 사업가 본인의 진술도 "앙심을 품은 허위 고발"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이번 사안은 사실로 확정된 비위가 아니라, 익명에 가까운 고발 한 건과 일부 매체의 보도, 그리고 그 위에 얹힌 정치적 압력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내가 20년 가까이 정치 언저리에서 별 볼일 없는 글을 써왔지만 민경선을 곁에서 본 시간이 있다. 그 시간까지 허접한 것은 아니었다. 3선 경기도의원 시절, 그가 자기 정치 자산을 만드는 방식은 한결같았다. 사람을 끌어모으는 화려한 행보가 아니라, 한 사안에 끝까지 매달리는 사람이었다. 광역교통, 신도시 교통체계, 버스·철도 연계처럼 표가 잘 안 나는 영역에서 묵묵히 일했고, 경기교통공사 사장 자리에서도 같은 결을 보여줬다. 적어도 내가 본 그는 토지 인허가 한 줄을 두고 봉투를 받고 다닐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의 결을 가까이서 본 사람의 말은 결정적이지는 않다. 다만 한 가지 위치에서, 한 시민의 자리에서, 그렇게 증언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정작 무겁게 보는 것은 이번 사안의 '구조'다.
선거 시즌만 되면 같은 풍경이 반복된다. 익명의 고발장이 떨어지고, 일부 매체가 그 고발을 받아 자극적으로 보도하며, 그 위에 "후보 교체 결단"이라는 문장이 얹힌다. 사실관계가 다투어지는 단계에서 한 후보가 본선에서 빠지면, 그것은 '경선' 이라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모욕이다. 10명이 경쟁한 전국 최다 경선, 예비경선·본경선·결선까지 3차의 절차로 결정된 후보가 익명 고발 한 건에 흔들린다면, 앞으로 어떤 후보가 그 자리에 안전하게 설 수 있겠는가.
본선 전에 사실관계가 결판날 수 없는 사안을 가지고 후보 교체를 결단할 정당은 어디에도 없다.
이게 통하면 정치는 정책으로 다투는 일이 아니라 고발장으로 다투는 일이 된다. 그리고 그 고발장의 진실 여부는 본선의 본질인 적이 없다. 고발장이 떴다는 사실 자체로 한 후보의 어깨에 짐이 얹히고, 그 짐의 무게로 본선이 결정된다. 이게 한국 정치가 정치자금법 위반 시비를 가장 자주 받는 곳이 되어버린 이유 중 하나다. 진짜 비위는 검찰의 손에서 결판나지 않고 선거 직전 매체의 손에서 결판난다.
여기서 시민사회의 자리가 결정적이다.
이런 흠집내기에 흔들리지 않는 유일한 방패는 성숙한 시민사회다. 시민이 후보의 평소 행적을 알고, 시민이 선거의 시점과 고발의 시점을 함께 읽고, 시민이 한 매체의 자극적 헤드라인 너머에 있는 사실관계를 묻는 것. 시민이 한 정치인의 평소 결을 자기 눈으로 본 사람의 자리에서 증언하는 것. 그 자리가 무너지면, 정치는 결국 고발장과 매체와 정치 공작을 운영할 줄 아는 자의 손에 들어간다.
고양은 일산 신도시가 생기면서 시민사회의 결이 가장 두텁게 쌓여온 도시 중 하나다. 4·16 이후의 시민운동, 일산호수공원에서 출발한 풀뿌리 정치 문화, 신도시 30년이 만들어낸 자치의 두께. 그 자긍심을 묻고 싶다. 지금 고양의 시민사회의 자리는 어디여야 하는가? 고양에서 정치의 무게중심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익명 고발과 자극적 보도의 손에 갈 것인가, 아니면 30년의 시민사회가 쌓아온 자기 자리를 지키는 손에 갈 것인가.
오해 없이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진실은 검증돼야 한다. 의혹이 있다면 수사가 진행되어야 하고, 수사 결과가 나와야 한다. 다만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한 후보의 자리를 매체와 일부 모임의 압력으로 흔드는 일은, 결국 다음 선거에서 누군가의 차례로 돌아온다. 한 번 학습하지 못한 일은 두 번째에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온다.
고양 시민이 결정해야 한다. 그 결정의 자리가 곧 한국 정치의 자리다.
* 글 : 노민호 (사)자치분권연구소 시민교육원장(사학명문 노민호아카데미 원장)
